차와 도자기의 마니아라면 꼭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지역명 - 경덕진(景德镇) 이번 내용은 경덕진에 대하여 간단하게 소개해 보자 합니다. 경덕진시의 최초명은 번(番)이였습니다.기원전 770년, 춘추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촉(楚)국에 속하여 작은 마을로부터 시작되었죠.시간이 흐르고, 역사의 시간이 지나면서 한나라 시절에 번양현으로, 동진나라 시대에 신평진으로, 당나라 시대에 신창현과부량현으로 도시명이 바뀌면서, 송나라의 진종(真宗)이 1004년에 이 지역에서 생산된 백자에 반하여서 자신의 연호를하사하여 경덕진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부량현에 위치한 옛날 고성, 차로 인하여 세금수익이 높아 높은 관직의 관아가 위치하여 '강남제일관아'로도 불립니다. 근데 이 변화속에서 중국 현지인들 조차 잘 몰랐던 내용이 있는데요, 사실 경덕진은 원래 차로 유명했던 지역이였습니다. 먼저 차가 있었고, 후에 도자기가 생겼다(先有茶叶,后有瓷器) 예전의 경덕진은 작은 마을이여서 부량현의 관할지역 이였습니다. 당나라 시대때 부량현으로 도시명이 바뀐 것은, 부량현에흡수되었던 것으로 보시면 되는거죠, 하지만 송나라시대에 문화중심으로 경제를 이끌어가던 송나라가, 외부침략에 나라가무너지면서 북송, 남송으로 갈리며, 북쪽에서 도자기 장인들이 전쟁의 혼란을 피해 남쪽으로 몰려오기 시작했고, 피난온장인들의 일부 사람들이 부량현의 지역에서 품질좋은 고령토를 발견하면서 정착을 하기 시작하였는데, 문제는 부량현에서도자기를 만들어 외부로 운반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육로보다는 수로로 운반하는게 시간을 절약 할 수 있었고, 특히 도자기는 쉽게 깨지기 때문에 수로가 안전했습니다.때문에 창강이랑 바로 연결된 경덕진은 도자기운반의 최적의 장소였고, 시간이 지나면서 완성된 도자기를 부량에서 경덕진으로옮기는 것 보다, 경덕진까지 고령토를 운반해서 경덕진에서 생산하여 바로 수로로 운반을 하는게 더 효율적인 것을 깨달은현지인들이 경덕진으로 몰리면서 경덕진의 도자기공방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하지만 경덕진에 있었던 수로는 본래 차를 운반하기 위해 있었던 수로였죠. 창강은 경덕진 그 자체이며, 창강의 예전 부두를 리모델링하여 현재 '어요경향'이라는 관광지가 생겼습니다. 당나라 시대부터 부량현에서 차가 생산되기 시작했는데요, 워낙 차의 품질이 좋아서 수요량이 급속도록 성장하였고,입소문을 타며 순식간에 유명한 차 생산지로 급등하여 당나라 3대 시인 중 한명인 백거이(白居易)선생의 '비파행(琵琶行)'에도기록될 정도로 유명했습니다."상인은 이로움만 중히여기고 이별을 가벼이 하니, 지난달 부량으로 차 사러 떠났지요(商人重利轻别离,前月浮梁买茶去)"그 만큼 부량에서 나오는 차는 유명했으며, 그 명성은 당나라 시대로부터 시작되어 송나라 시대의 경덕진 도자기보다 먼저유명해졌기 때문에, 지금의 경덕진 현지인들은 먼저 차가 있었고, 후에 도자기가 생겼다고 합니다.물론 그 시절에도 도자기를 생산하고 있었으나, 북방에서 생산된 도자기 위주로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후에 송나라 시대에 북방에서 장인들이 경덕진으로 이주하여 정착해지면서 유명해 진 것이죠. 경덕진 지역에서도 기문홍차(祁门红茶) 홍차를 생산한다?! 좀 더 자세히 부량차에 대해 알아보자면, 그 유명세에 의외로 깜짝 놀라게 됩니다.우리나라에서야 잘 들어본 적이 없는 "갑툭튀"로 보이겠지만, 사실 오래전부터 전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부량차였죠.당나라 시대때는 녹차로 유명했다지만, 1915년 민국시대때 파나마국제박람회에 부량홍차로 참가하여 금상을 수상했습니다.하지만 그 전부터 '기문홍차'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했는데, 본래의 기문홍차는 부량에서 시작되었던 겁니다. 중국의 일부 차의 이름에는 지역이름이 들어가는데요. 그 이유는 구분이 쉽고, 또 그 지역의 특산인 것을 강조하려 한겁니다.기문홍차는 원래 중국인들도 몰랐던 차였습니다. 워낙 생산량이 적고, 고가에 외국상인들이 싹 쓸어서 가져갔기 때문이죠.부량은 앞서 말했듯이 산세가 험하여 외부인들이 잘 들어가기 힘든 지역이였습니다. 하지만 바로 부량 바로옆에 위치한기문에는 외국상인들과의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죠.외국상인들이 몰려든 이유는, 기문 사람중에 한 명이 복건에 갔을때 외국상인들이 홍차를 많이 구매하는 것을 보고는, 홍차기술을배워서 기문에서 홍차를 생산하여 외국상인들끼리 입소문이 나면서 기문으로 몰리기 시작한 것입니다.이를 또 부량에서 차를 생산하던 사람들이 바로 옆동네에 있는 기문에서 외국상인들이 홍차를 구매해 가는 것을 보고는,부량사람들이 기문에서 홍차 제다법을 배워서 자신들만의 홍차를 만들어 기문까지 가서 판매를 시작하였습니다. 기존의 기문홍차보다 부량의 홍차 특유의 향에 외국상인들이 홀딱 반하여 고가에 전부 구매하기 시작하였으나, 외국상인들은이 차가 어디에서 생산하는지는 몰랐기에, 본국에 돌아가서 기존의 기문홍차와 같이 이 역시 기문홍차라고 판매하게 되면서지금의 기문홍차가 유명해지기 시작한 겁니다.그리고는 인도의 다즐링, 스리랑카의 우바, 중국의 기문홍차가 세계 3대 홍차의 반열로 올라갔으며, 엄밀히 따지면 경덕진은 부량의관할지역였고, 지금은 경덕진시로 승격되면서 부량현이 경덕진시의 관할지역으로, 사실 경덕진은 예전부터 차로 유명한 지역으로보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부량홍차는 기문홍차와는 별개입니다. 자신들만의 부량홍차가 파나마국제박람회에서 이미 인정을 받았으며,부량홍차라는 그 타이틀은 이 지역의 자존심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아직도 많은 양의 찻잎이 기문으로 판매되고 있습니다. 향운감래는 부량차를 취급하지 않습니다. 다만, 나중에 코비드-19 사태가 종식되고, 경덕진의 여행이 자유로우실때,여행차 향운감래를 방문하신다면, 경덕진 지역의 차 산지 투어 프로그램을 이미 진행하고 있기에 차 산지 투어도 가능합니다.본문은 많은 내용을 생략한 내용이기에 좀 더 자세한 문의사항이 있으실때는 언제든 연락주시기 바랍니다.